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몽골 제국군 (문단 편집) === [[천호제]] === || 아르반(아르밧) || 10명 정도의 병사를 공출 가능한 집단. || || 자군(자굿) || 100명 정도의 병사를 공출 가능한 집단. || || 밍칸(밍갓) || 1,000명 정도의 병사를 공출 가능한 집단. || || 투멘(투멧) || 10,000명 정도의 병사를 공출 가능한 집단. || 공식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1206년]]으로 [[테무진]]의 몽골 통일이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을 때였다. 몽골 고원의 부족들은 여러 갈래로 갈라져 이합집산을 계속해 오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을 필요가 있었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새로운 편제인 '''천호제'''였다. 군제는 '''투멘''' 단위로 운영되었는데, 일례로 《원조비사》의 기록에 의하면 칭기즈 칸이 몽골 고원을 통일했을 당시 몽골의 병력을 95 '''밍갓'''으로 잡고 있다. 즉 당시 몽골이 동원할 수 있었던 총 병력은 이론상으로 95,000명에 상당하다는 것이다. 물론 실제 투멘의 정원이 꽉 차는 일은 드물었고, 북조지아 대학의 티모시 메이 역사학 교수에 의하면 대개 60% 정도의 인원만을 유지했다고 하기 때문에 이 추정에 따른 수정치는 대략 57,000명 가량이다. 당시 몽골 고원의 인구는 100만 명 이하인 70만명으로 추정된다. [[1250년]] 무렵인 제4대 [[몽케 칸]] 시절에는 원 본국의 정규군이 90 투멧, [[일 칸국]]이 22 투멧, [[킵차크 칸국]]의 43 투멧을 비롯하여 거의 100만 명에 달하는 대병력이었다. 이들은 제국의 광대한 영토에 넓게 퍼져 있었으며, [[동해]]에서부터 [[흑해]]까지 달하는 지역을 지켰다. 십호장은 백호장의 지휘를 받고, 백호장은 천호장의, 천호장은 만호장의 지휘를 받았으며, 마지막으로 만호장은 대[[칸]]의 지시를 받았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직속 상관의 명령만을 따르도록 되어 있었다. 10명이 모인 단위인 '''아르반'''은 강한 결속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특례를 제외하면 병사는 자신이 소속된 아르반을 옮길 수 없었으며, 전투 중 적에게 사로잡힌 병사는 해당 아르반의 동료들이 구출해야 했다. 연대 책임이 적용되어 탈주자가 나왔을 때는 해당 아르반의 구성원들이 모두 참수당하는 등 공동운명체적인 성격도 있었다. 50명이 모인 집단인 '''렌'''도 있었다. 이는 군대가 움직이던 최소 단위로 추측된다. 많은 튀르크계 유목민족들과 마찬가지로 몽골군도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었다. 신체 건강한 15 ~ 70세의 몽골 남성은 모두 군역의 의무를 졌으며, 평시에는 생업에 종사하다가 전시에 소집되어 싸웠다. 물론 징집병이라고해서 이들을 정주민족의 징집병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목축과 수렵 등 유목민족의 일상은 농경민족에 비해 전투기술과 연관된 요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점을 들어 몽골인은 대단했지만 몽골군이 정예병은 아니었다는 주장도 존재하는데, 존 마슨 스미스 주니어(John Masson Smith Jr.)가 대표적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